완벽을 추구하는 최고의 선수
존 매켄로 John McEnroe는 자신이 벌이는 플레이가 모두 완벽한 기록으로 남기를 원했다. 비록 그것이 항상 도움이 되는 태도는 아닐지라도.
매켄로가 아직 주니어팀에서 뛸 때였다. 윔블던이나 US오픈 같은 공식 경기가 아닌 이상 판정에 문제가 있을 때는 선수들 각자가 선심을 부르는 것이 관례였지만 매켄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매켄로는 자신이 정직하게 플레이한다는 것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고 다른 선수들도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한번은 대회 임원이 아버지에게 “저 아이는 왜 공이 라인 근처에만 가면 스스로 선을 넘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매켄로는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판정이 나오면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은 것이다.
이런 행동은 주니어 시절에는 손해가 됐을지 모르지만 결국 매켄로를 최고의 선수로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매켄로는 그랜드 슬램 대회 우승 7번을 포함하여 단식 우승 77번, 그랜드 슬램 대회 우승 9번을 포함하여 남자복식 우승 77번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눈부신 기록행진은 겨우 18세에 윔블던에서 우승하여 남자부문 최연소 윔블던 우승자로 기록되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는 또한 8년 연속 미국 데이비스컵에 출전한, 미국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테니스의 천재소년
매켄로는 어릴 때부터 최고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녔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테니스 교실에 처음 가 본 여덟 살 때 매켄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라켓을 잡자마자 두각을 나타낸 매켄로는 테니스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벌써 이 시기에 했던 것이다.
먼저 자신이 기술이 뛰어나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그가 한 일은 가능한 한 많은 경기에 참가한 것이다. 매켄로는 고지식할 정도로 규칙을 준수했고 타협하거나 심판을 속이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규칙을 어기려고 하면 매켄로는 참지 않고 잘못을 지적했다.
상대 선수가 게임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큰소리로 불평하기도 했는데, 이럴 때 관중들은 매켄로가 하는 말을 단순한 불평으로만 받아들이고는 그가 뭘 말하는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매켄로는 오해를 받을지언정 어떤 타협이나 잘못된 판정에 승복하지 않았다.
팬들도 점차 매켄로가 화를 내는 이유가 모든 경기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59년생인 매켄로는 1999년에 독일 출신 여자 테니스 선수 슈테피 그라프 Steffi Graf와 함께 윔블던 혼합복식에 출전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여느 선수라면 진작에 은퇴를 하고도 남았을 나이였기 때문이다.
팬들은 매켄로가 코트에서 소리지르며 특유의 몸짓을 보여 주기를 바라게 되었고, 매켄로도 그 점을 잘 알았다. 실제로 그는 마지막 경기까지 그런 모습을 보여 주며 팬들을 즐겁게 했다.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할 때에도 결코 코트에서 우물쭈물하거나 소극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매켄로는 심지어 친선경기에서도 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매켄로는 “나는 패배를 즐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나이가 들수록 경기에 지고 맛보는 씁쓸한 맛 또한 커진다”고 말해 자신의 은퇴를 시사하기도 했다.
매켄로 같은 정상급 선수들에게 친선경기란 사실 단순히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매켄로에게는 이런 경기도 하나의 도전이었고 최선을 다해 경기를 풀어 나가려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백분리정책이 여전할 때, 매켄로에게 흑인선수와의 친선경기 제의가 들어왔다. 그러나 매켄로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 경기는 진정한 게임이라고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이 이기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정권은 그걸 빌미로 백인의 우월성을 선전하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매켄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정권의 편의를 위해 내 경기가 이용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친선경기에서도 매켄로는 팬들과 테니스 경기 자체를 철저하게 존중하며 정식 토너먼트 대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켄로가 숙적 지미 코너스Jimmy Connors와 친선경기를 할 때의 일이다. 그날 밤은 평상시와는 달리 무척 추웠고, 매켄로와 코너스의 대결은 야간경기로 열린 그날 테니스 대회의 마지막 시합이었다. 1세트는 코너스가 간단히 승리를 따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관중들은 매켄로가 나머지 세트도 얼른 내줘 버리면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매켄로에게는 팬들에게 멋진 경기를 보여 주는 것이 더 중요했고 나머지 3세트에서 최선을 다해 결국 승리했다.
경기가 예상 외로 길어져서, 호텔에 돌아온 건 새벽 2시였다. 영국의 테니스 전문기자이자 매켄로의 전기작가이기도 한 리처드 에반스 Richard Evans는 단지 친선경기일 뿐인데 왜 그렇게까지 무리를 했느냐고 물어 보았다. 매켄로의 대답은 이러했다.
“친선경기는 그저 재미를 위한 것이며 팬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임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게임을 그런 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선을 다하며 최고를 추구하라
매켄로는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도 최선을 다할 것을 강요하는 사람이다. 만일 주변 사람들이 자기 말을 따르지 않으면 무섭게 다그쳐서 더욱 노력하게 하는 무자비한 면도 있다.
또 다른 친선경기에서 체코 출신의 장신 테니스 스타 이반 렌들 Ivan Lendl과 시합할 때였다. 어쩐지 렌들이 경기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다고 여긴 매켄로는 그를 더욱 움직이게 만들어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매켄로는 이렇게 회상한다. “대개의 선수들이 6대 1 정도로 적당히 경기를 마친 뒤 얼른 코트를 떠나 버린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렌들의 그러한 태도는 신성한 테니스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매켄로는 어디 한판 제대로 해보자는 메시지를 담아 엄청난 위력의 체인지업을 렌들의 정면에 때려 넣으며 욕설을 퍼부었고, 렌들은 “당신이 내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지”라고 응수했다. 결국 전술은 맞아떨어졌고 매켄로는 “그날 경기에서 렌들은 아마 자기 생애 최고의 실력을 발휘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많은 경기에서 승리하고도 메켄로는 다른 스타들처럼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렸다. 항상 겸손하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행동하며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자신이 훌륭한 테니스 선수라는건 인식하고 있었지만,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Newsweek>의 표지 인물로 선정됐을 때는 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대통령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라며 매스컴의 지나친 관심에 불평을 터뜨린 적도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 Daily Telegrapb>가 매켄로의 수많은 승리에 대한 대대적인 보도를 했을 때도 정작 본인은 “테니스는 테니스일 뿐이고 사실 인간으로서 내가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따끔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매켄로가 조그만 불만도 속으로 쌓아 두지 않고 꼭 한마디씩 불평을 터뜨리는 건 이런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독일 출신 신예스타 보리스 베커 Boris Becker와의 경기에서 소리소리를 지르며 경기에 열중하던 매켄로는 경기가 끝나고 조금 진정이 되자 자신의 행동이 무례했고 베커에게 모욕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바로 다음날 매켄로는 베커를 저녁식사에 정식으로 초대했다. 매켄로는 “식사하면서 우리는 경기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결국 그날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은 다 정리되었다”고 회상했다.
너무나 솔직하고 도발적인 사람
이 글은 매켄로를 사랑하는 팬들과 동료들에게 바치는 글이며 또 현대 테니스사를 장식한 대선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매켄로는 미국 데이비스컵에서 무려 13년간이나 국가대표팀으로 활약했고 남자 단식에서 41승을 올렸다.
매켄로는 주장이 되고 싶어 했지만 승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매켄로는 “나는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지나치게 고지식하다. 남에게 호감받는 사람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올바르게 살고 싶고 그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며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은퇴 뒤에도 자기 마음속의 일을 다 털어놓는 이런 태도에는 변화가 없다. 한때 USA 케이블 네트워크와 NBC 방송에서 해설위원으로 일하던 시절 매켄로는 종종 거침없는 해설을 쏟아 내어 시청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요즘 이 테니스 스타가 매료되어 있는 건 예술인 것 같다. 뉴욕의 그리니치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매켄로는 테니스와 마찬가지로 예술계에서도 결국 예술품의 질로 승부하는 것이 옳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언젠가는 르노아르의 풍경화를 무려 30만 달러나 주고 잽싸게 구입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작품은 고작 B급에 불과했다. 이로써 내가 배운 것은 언제고 최고의 작품을 사야 한다는 것이었다.”
참조: 승부사 폴 베어 브라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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